과학기술은 인간의 고통을 제거할 수 있을까?
과학 기술이라는 매혹적인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려졌고 인간은 이제 그 속에서 튀어나온 모든 악과 고통에 대처 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고통을 제거할 수 있을까?
요즘 생명공학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가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줄기 세포의 응용 가능성이 여전히 불확정적이며 많은 과학자들이 줄기 세포를 주입했을 때 그것이 새로운 세포층으로 발달할지, 기존의 세포와 융합을 할지에 대해서 여전히 확답을 못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종양으로 발전하면 기형종 같은 것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많은 과학자들이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을 하면 황우석 교수나 일부 생명공학자들은 과학의 발전이 모든 문제를 해결 해줄 것이라 라며 반론을 펼 것인데 단순히 ‘그런 기술은 효율성이 낮고, 여러 가지 위험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과학지상주의’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결과만 보고 그 결과에 대하여 다시 수정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한 예로 농약의 경우가 있는데 처음 사용할 때는 해충이 사라져서 수확량이 늘었으나 농약을 칠수록 해충의 내성강화라는 복명을 만나 점점 독성이 강한 농약을 사용하여 해충은 해충대로 제거하지 못하고 독해진 농약만큼 인간에게 피해를 주어 최종적으로 극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또, 냉매제인 프레온 가스(Freon gas)가 나왔을 때 암모니아를 대신할 냉장고용 냉매로서 혁신적이었으나 지금은 오존층파괴의 주범으로 생산이 동결된 사례도 있습니다. 이 사례들에서 보듯이 인간을 위해 사용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고통을 제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쉽게 답을 내리기 힘듭니다.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 무너져 가는 회색 건물 속에 누더기만 입고 있을지, 환경 및 식량문제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과학이 승리했을지 미래에 대한 선택은 과학자들과 공학인들의 몫이며, 이 선택은 다른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들이 ‘과학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 토론을 하다 보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진정 인간을 위해 사용되어 판도라의 상자의 악과 고통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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