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생태학 또는 에코필로소피

 

 

 

1. 서문

심층생태학은 모든 비인간 중심 이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론이다. 이 용어는 노르웨이 철학자인 네스에 의해서 처음 사용된 이후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최근에 와서 네스/드볼/세션과 같은 학자들 사이에서 환경문제에 대해서 접근하는 주요한 방법론이 되고 있다.

‘심층적인’으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의 ‘deep'과 상대되는 용어는 우리말의 ’피상적인‘ 정도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의 ’shallow'라 할 수 있으며 이 두가지 사이의 구분은 1973년 네스를 통해 이루어졌다. 피상생태학 운동은 선진국의 국민에 대한 건강과 풍요를 보호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심층생태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 운동은 환경에 관한 인간중심의 사고를 거부하고 관계적이고 전체적인 범위에서 조망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도덕적 전체론 또는 비인간중심적 접근을 선호한다고 할 수 있다.

심층생태학이 피상생태학에 비해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현재의 생태학적 위기가 그만큼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인간이 환경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 접근해 왔던 대증적 요법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도 된다. 심층생태학이 추구하는 것은 생태학적 위기에 대해서 진단과 처방이 근본적이고 심층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한 요청에 대해서 드볼과 세션은 ‘매우 낡고 오래된 것에 대한 재인식’, 즉 생태학적 양심의 수양 또는 생태학적/철학적/정신적 접근을 강조한다.

하나의 철학운동으로서 심층생태학은 현재 우리의 지배적인 세계관이 환경파괴와 위기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급진적인 환경운동과도 관계있으며 이 단체들은 심층생태학이 자신들의 행동주의를 정당화시켜 준다고 이해한다.

심층생태학은 자신의 입장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전략을 사용한다. 하지만 가장 성공적인 전략은 공동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심층생태학은 ‘근본 지침’이 되는 것을 제시한다.

 

2. 심층생태학의 근본 지침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생태학적 위기는 세계관에서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나온 것이 심층생태학이다. 심층생태학은 요구되는 변화의 유형에 대한 연구와 대안의 철학을 연구하는 두 분야로 나누어질 수 있다. ① 과학자/예술가/정치적 활동으로서 ② 네스에 의해서 에코필로소피 또는 에코소피 로 나타나고 있다.

네스와 세션은 심층생태학의 공통의 원리, 즉 근본 지침이 되는 여덟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 땅 위의 인류와 비인류의 생명체가 번성한다는 것은 내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인간적 존재의 삶의 가치는 독립된 유용성에 있으며, 이들에 대한 인간의 목적은 제한되어야 한다.

2. 생명체의 풍요와 다양성은 그것 자체로서 가치 있으며, 땅 위의 인류와 비인류의 삶을 번성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

3. 인류는 생명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욕구를 제외하고 이러한 풍요와 다양성을 감소시킬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4. 비인류의 세계에 대한 현재 인류의 간섭은 지나치며, 이러한 상황은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다.

5. 인류의 삶과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것과 인류의 인구수를 지속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은 서로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 비인류의 생명을 번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감소가 필요하다.

6. 더 나은 삶의 조건에 대한 의미 있는 변화는 정책에서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근본적인 경제적/기술공학적/이념적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7. 이념의 변화는 높은 수준의 삶에 집착하기보다는 오히려 주로 삶의 질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크다는 것과 위대하다는 것 사이의 심오한 차이를 깨닫는 것이다.

8. 위에서 언급한 것들에 대해서 동의하는 사람은 요구되는 변화를 이행하기 위한 시도를 하는 데 참여해야 할 직접 도는 간접적으로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3. 생태철학과 생태학의 문제

생태학은 환경적 무질서를 진단하고 이에 따라 처방을 내리고자 할 때 유익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 생태학은 인간의 단기적인 일시적 처방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따라서 과학자 집단을 비판한다.

우리는 생태학을 통해서 세계에 대한 유익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윤리학적 평가와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다. 하지만 생태학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환경문제에 관한 논쟁에서 오류를 범하지는 않아야 한다. 네스는 생태지상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① 생태학이 세계관의 모든 것은 아니다 ② 생태학을 구체적인 환경문제에 대해서 처방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 기술공학적인 처방이라는 피상적 기준을 마련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의 ‘생태학적 양심’의 전개가 피상적인 단기적 처방을 간편하게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또한 생태학이 문화의 근본 가정을 문제삼는 저항 문화운동을 위한 정치적 전략으로서 이용되는 것 또한 위험스러운 것이다.

 

4. 지배적 세계관에서 형이상학적 생태학으로

생태학은 우리에게 환경문제에 관한 근본적이고 심층적인 통찰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생태론자들이 내린 결론은 문제에 대한 해결이 우리의 근본적인 세계관의 변화와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전통적으로 형이상학적 문제라고 한다. 심층생태학은 과학적 생태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형이상학적 생태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산업사회의 지배적인 이념은 개체론 또는 환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계관은 인간에 대해서는 나머지 자연과 달리 이해된다.

이와 같은 지배적인 세계관에 대한 거부가 형이상학적 생태학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인간은 환경 속에서 다른 요소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구성되며, 이 점에서 환경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라는 문제를 결정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네스가 ‘관계적이고 전체 영역에 대한 표상’이라고 말했을 때, 이것은 우리 인간이 관계를 통해서 형성된다는 인식을 암시하는 것이다. 인간들 사이에,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가 없다면 인간은 문자 그대로 다른 유형의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심층생태학은 최소한 서양철학에서 당연한 것으로 이해해 왔던 개체라는 실재를 부정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확실히 주류가 되는 서양 철학으로부터의 급진적인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네스는 과학적 생태학은 개별 유기체들이 다른 실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형이상학적 결론을 ‘고무하고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생물 물리학자인 모르위츠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현대의 관점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각각의 생명체는 흩어져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따를 경우, 개체의 실재는 복잡한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된다.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분자들과 더불어 안정적이지 못한 전체는 형태와 구조를 보존하기 위하여 에너지의 지속적인 흐름에 의존한다.”

심층생태학은 세계가 ‘개체’와 ‘전체’같은 범주로 이미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심층생태학은 지배적인 세계관이 개체와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 인위적인 구분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5. 실재 : 형이상학-윤리학 : 비폭력적 의사소통

생태철학의 목적은 형이상학/인식론에 대한 철학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며, 그리고 실재에 관한 대안의 윤리학적 견해에 대해서 철학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다.

주체인 인간은 세계를 해석하고, 단단하며, 인식하며, 가치평가하고,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주관적인것인데, 그 이유는 이러한 것들이 주체인 인간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통한 현실세계의 인식은 객관적인 진리로서 이해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객관적인 설명이 이성적이고 참된 것이라면 주관적인 판단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서 17세기 철학자들은 물리적 대상에 대해서 제1성질과 제2성질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제1성질은 크기/형태/양/연장/운동으로서 그 대상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실제 있는 그대로를 반영한다. 제2성질은 색깔/기질/맛/향기와 같은 것으로서 대상과 관찰자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자연에 대한 과학의 역할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었으며, 현실세계는 수학적이고 물리학적이며 기계적인 세계로서 증명되기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자연 대상에 대한 더욱 복잡한 설명인 제3의 성질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것은 제2성질에 비해서 더욱 더 덜 객관적이고 참된 것이다. 제3성질은 아름다움/위엄/장엄 등은 전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 달려있다고 보는 단지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고 있는 것뿐이다.

심층생태학에서는 인간 주체가 본질적으로 자연세계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네스는 이와 같은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 “개발론자와 보호론자 사이의 충돌은 실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데 있어 나타나는 어려움이다. 보호론자들은 숲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데 있어 통일, 형태로서 이해한다. 반면에 개발론자들은 기하학적인 중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보호론자들과 비교할 경우, 개발론자들은 근본적인 무지에 의해서 고통을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환경문제에 관한 윤리학은 우리가 실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근거하고 있다.

네스는 자연발생적인 감정/반응/느낌의 표현이 그 자체로서 이성적인 주장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인정하지만 ‘강한 느낌에 따라서 동기화된’ 평가와 판단이 명확하게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 또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생태철학자들이 부딪치는 문제는 환경적 판단들이 이성적이고 참이 되는 판단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보존론자들과 개발론자들은 서로 다른 실재를 경험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개념과 인식은 서로 다른 전후관계 내에서 일어나며 많은 상이한 개념들과 인식들이 관계하는데 이것을 네스는 ‘형태’ 또는 ‘전체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점은 개발론자들과 보존론자들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근본적으로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남겨 놓는다. 네스는 계속되는 논의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한쪽 또는 다른 한쪽이 확실한 것으로 증명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며 ‘절대론’을 피하고 우리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 데 있어 더욱 주의한다면, 그리고 우리의 반대자들과 솔직하고 비폭력적인 의사소통의 길을 유지한다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6. 심층생태학의 두 가지 기준 : 자아실현과 생물중심적 평등

심층생태학의 궁극적인 두 가지 기준으로서 자아실현과 생물중심적 평등을 지적할 수 있다. 자아실현이란 인간이 자신을 다른 나머지 자연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존재하는 것으로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며 생물중심적 평등이란 모든 유기체와 존재가 동등하게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존재라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생물중심적 평등에서 모든 유기체는 동등한 본래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

자아실현의 철학적 전통이 암시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란 자기 반성의 과정을 통해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며 자아실현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피상적인 이해관계와 심층적인 이해관계를 비교하여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자아실현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필요/이해관계/그리고 욕구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요란 우리가 생존을 위하여 필수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이해관계는 우리의 복지와 안녕에 기여하는 것들이다. 욕구는 즉각적으로 바라는 것이며, 누군가가 어느 쪽에 기울어 지향하는 목표들이다.

이러한 개념들 사이에는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이해관계와 욕구이다.

욕구는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해관계는 한 개인에게 무엇이 좋은 것인가와 관계되는 것이다. 욕구가 모험을 통해서 개발되고 선택되고 창조되는 것이라면, 이해관계는 이해될 수 있고 발견될 수 있는 것이지만 선택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삶이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이고 참된 이해관계를 추구하며 지내는 것이다. 자기 이해관계가 적절하게 이해될 경우, 그것은 인간을 위하여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삶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작은자아와 큰 자아의 구분을 사용한다. 작은 자아는 의식적인 믿음/욕구/자아관념에 의해서 형성된 자아이다. 반면에 큰 자아는 이러한 자아의 근거가 되는 인간의 참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심층생태학에서 자아란 ‘큰 자아’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자아는 자연세계와 하나가 되는 자아이며, ‘자아실현’이란 우리가 더 큰 전체의 부분으로서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 자기 반성의 과정이다. 인간의 존재가 자연세계의 다른 부분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면 자아실현이란 이러한 통일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심층생태학에서는 개체론적 자아의 이해를 부정한다. 심층생태학에서는 자아실현은 자아가 자가 그 자체로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며 자기-이해관계는 자기-이해관계로서 이해된다.

심층생태학의 궁극적인 기준이 되는 두 번째 기준은 생물중심적 평등이다. “생물권의 모든 존재는 더 큰 자기실현 내에서 자아실현과 자기 표현 같은 그들 자신의 개체의 형태에 이르고 번영하여 살아가기 위한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물중심적 평등은 타일러가 “자연에 대한 존경”에서 전개하고 있는 ‘평등하고 고유한 가치’의 개념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타일러의 생명중심주의는 서양의 철학적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심층생태학의 생물중심적 평등은 형이상학적 전체론으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심층생태학의 근본지침3을 주목한다면 무엇이 ‘생명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욕구’인가? 이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네스는 생명활동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높은 수준의 삶은 전원에서의 생활이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드볼과 세션은 어떤 특별한 경치에 대한 사랑/유희/창조적표현/친말한 관계와 같은 것들도 포함된다는 것을 제안한다. 따라서 심층생태학의 생물중심적 평등이 함축하고 있는 윤리학적 실천적인 측면은 개체론적인 철학에서 나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심층생태학의 이러한 주장은 우리의 삶에 실천적 측면, 인간의 삶의 양식은 ‘지구 위를 가볍게 걸어가는’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① 인간이 단순하게, 상대적으로 비과학기술적이고 자기의존적이며 지방분권화된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 ② 생태계의 개념과 비슷한 공동체는 전통적인 정치적 조직보다는 오히려 지역적으로 조직화될 수 있어야 하고, ‘생물 지역’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물질에 대한 욕구는 인간 사회의 인위적인 산물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른 종, 지구위에 영향을 미치는 최대한이 아니라 최소한으로 살아야 한다.” 이러한 이상은 지역공동체가 그들 주위 환경과 조화롭고 자기조절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이상을 ‘에코토피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는 자연을 지배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다.

 

7. 요약 및 결론

심층생태학이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철학과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 이 장은 심층생태학이 합의하고 있는 가장 공통된 철학적 주제와 개념에 대해서 개괄하여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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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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