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드의 대지의 윤리와 전체론
1. 서문
생태중심의 환경윤리학(ecocentric environmental ethics)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학자로서 알도 레오폴드(A. Leopold)를 지적할 수 있다. ‘대지의 윤리’(The Land Ethic)로 제목 붙여진 “모래 땅의 사계”(A Sand County Almanac)는 환경운동의 고전이며 이는 생태 중심 윤리학을 체계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첫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레오폴드의 사고의 발전은 포식자에 대한 사고의 변화와 대응하는 것이다. 그는 자연자원을 관리하기 위한 과학적인 기술과 원칙을 도입하였는데, 그것은 사냥감의 관리였다. “다른 모든 농업과 관련된 기술처럼 사냥감에 대한 관리는 환경과 관련된 요인들을 통제함으로써 수확물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레오폴드는 포식자에 대한 보존주의자의 입장에서 출발하였다. “포식동물의 감소가 상황을 촉진시킨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즉 최소한 우리가 걱정할 만한 정도의 심각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포식동물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해로운 동물들의 위협은 계속될 것이고, 이러한 동물들의 감소는 실제적이고 강제적이며 체계적인 행동계획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연에 관한 보존주의자의 접근이 안고 있는 문제를 이해하려고 하였다. 자연을 인류의 목적을 위하여 조작될 수 있는 단순한 대상일 뿐으로 이해하려는 보존주의적 접근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① 자연의 상호 연관성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 ② 기계론적 접근은 지구를 ‘죽은’ 것으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레오폴드는 거의 저서 “유해 동물의 문제”(Varmint Question)를 출판한 이후 보존의 문제를 공리주의적인 경제학적 산출을 뛰어넘어 ‘도덕적 문제’로서 논의하기 시작했다.
레오폴드의 이와 같은 새로운 관점은 ‘생태과학’(ecological science)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1940년대 후반에 “대지의 윤리”에서 가장 충실하게 전개되었다.
2. 대지의 윤리
레오폴드는 대지의 윤리를 자신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아내의 노예 십여명을 교수형에 처한 에디세우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윤리학은 특정한 계층이 아닌 모든 인류에게 그 영역을 확장하여 왔다. 레오폴드의 대지의 윤리는 바로 이와 같은 윤리학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인간은 대지에 대해서 특권은 누렸지만 어떤 의무는 가지지 않았다.
근대의 로크 또한 대지를 재산으로 이해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욕구에 따라서 어떠한 형식으로든 즉시 처분될 수 있는 단순한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대지의 윤리에서 대지는 이제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이해되고 건강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또는 상처를 입거나 죽여질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레오폴드는 대지의 윤리를 도덕적 확장주의의 입장에서 전개하고 있다. “우리가 아직 대지의 윤리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최소한 새들이 지속적인 생명 유지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함으로써 도덕적 고려의 대상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레오폴드가 싱어/스톤/레간처럼 식물과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려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자연대상을 인간의 이익을 위하여 ‘관리’될 수 있고 ‘자원’으로서 이용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레오폴드의 이와 같은 명백한 자기 모순은 그의 사상을 전체론적으로 이해할 경우 풀릴 수 있다. 즉 도덕적 지위가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것을 ‘대지공동체’로 이해하는 것이다. ‘생태학적 양심’은 우리에게 인간은 단지 생물공동체의 구성원일 뿐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레오폴드는 도덕적 고려의 대상을 타자에게도 확장하자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범주의 변화를 도모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도덕적 지위를 인정해야 하는 것은 공동체이며, 그 상징적 표현이 ‘대지’인 것이다.
“하나의 사물은 그것이 생물공동체의 통합성/안정성/아름다움을 보존하려는 경향이 있을 때 옳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을 때 그릇된 것이다.” 레오폴드의 생물공동체에 대한 이와 같은 통찰이 생물학의 기본 원리와 결합할 때 구체적인 규범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그는 생물공동체의 이해를 위하여 ‘생물적 피라미드’또는 ‘대지 피라미드’라는 상징을 사용한다.
대지 피라미드의 상징은 태양 에너지의 흐름, 그리고 생물과 비생물적 요인을 이해할 수 있는 ‘고도로 조직화된 구조’이다. 이 상징은 식물류->조류와 설치류->동물류의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각각의 종은 많은 사슬 속에 연결되어 있다. 피라미드는 무질서하게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복잡한 사슬로 얽혀 있지만 체계의 안정성은 그것이 고도로 체계화된 구조를 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것의 기능은 그것의 다양한 부분들의 경쟁과 협력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복잡성의 체계는 우리가 따라야 할 가장 보편적이고 일차적인 규칙이 되는 것이다.
레오폴드는 “모래땅의 사게”에서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적은 것으로 살아갈 때, 그리고 자급자족하는 삶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레오폴드가 ‘자신의 정신이 노동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가 참나무의 생명순환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순환의 한쪽 끝에서 참나무는 농장의 집에 열을 제공하는 한편, 산불이 일어난 장소에서는 재가 된다. 따라서 한 그루의 위대한 참나무의 죽음을 두고 죽음 그 자체를 슬퍼하기 보다는 더욱 포괄적인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인류를 포함하여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생태학적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조화롭고 안정된 관계 속에서 공동체 각각의 구성원들은 다른 생명의 삶에 기여하는 ‘자원’이 되는 것이다. 자원은 사용되지만 반드시 체계 속으로 다시 ‘순환되는’것이다. 공동체는 이렇게 끊임없이 계속되는 상호 의존성에 의해서 구체화된다. 결론적으로 공동체의 건강함이란 공동체가 오랜 동안 통합성과 안정성을 지속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대지의 윤리에 대한 몇가지 철학적 관점을 정리해 보자. ① 대지의 윤리는 공정하고 포괄적인 전망을 제공한다. 대지의 윤리는 생태학적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유익한 도움을 줄 수 있다. ② 대지의 윤리는 개체론적인 생물중심적 접근에서 문제되는 직관으로부터 나오는 많은 결론을 회피하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중요하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체계의 계속적이고 건강한 기능수행이다. ③ 대지의 윤리는 철저히 비인간중심적이라는 점이다. 이로써 인류는 ‘정복자’에서 단순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축소된다.
결론적으로 대지의 윤리는 도덕적 지위체계의 변화를 가져왔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리고 생태학의 가르침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3. 레오폴드의 전체론
레오폴드의 전체론이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그의 주요한 관심사는 공동체 각 구성원의 복지가 아니라 ‘공동체’의 복지이다.
우리가 윤리학적 전체론을 채택하는 것이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① 윤리학적 전체론이 자원의 관리에 관한 결정을 이끌어내고자 할 때 가장 실질적인 접근법이라는 것 ② 윤리학적 전체론은 생태학에서 암시하고 있는 인식론적 전체론에 의해 내포되어 있다는 것 ③ 윤리학적 전체론은 생태학적인 전체를 형이상학적인 실재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① 우리가 윤리학적 전체론을 채택하려는 실질적인 근거는 부분적으로 개체론적 사고의 실패로부터 비롯된다.
② 인식론적 전체론이 중요한 이유는 생태학에 대한 적절한 이해는 그것이 전적으로 전체론적이고 기능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태계에 관한 기능공동체 모델은 자연스럽게 윤리학적 전체론에 적절한 근거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③ 레오폴드는 대지 그 자체를 생명체로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기체론적 모델을 통해서 함축되고 있는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 전체론은 윤리학적 전체론을 수용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레오폴드는 어떤 모델을 상대적으로 선호한 것일까? 대지의 윤리를 그의 가장 성숙한 업적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그가 에너지 모델과 기능공동체 모델을 선호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4. 대지의 윤리 비판 1 : ‘사실’과 ‘당위’
레오폴드의 대지의 윤리에 대한 비판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입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는 사실과 가치를 혼동하고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전체론이 함축하고 있는 윤리학적 측면이다.
① 윤리학에서 가치문제를 생태학이라는 사실로부터 추론하였다는 점이다. 자연적 사실에 근거하여 가치판단을 이끌어낼때 논리적인 단절이 발생한다. 레오폴드가 ‘생태학적 통합성과 안정성’에 관한 자연적 사실로부터 가치 또는 윤리적 판단을 이끌어내는 것은 ‘자연주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are)과 사물이 어떠해야 한다(ought)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레오폴드의 입장을 유기체적 생태학적 모델에 근거하여 설명할 경우 이러한 입장은 잘 드러난다. 육식동물은 체계 내의 개체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에 그것은 선하고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체계 그 자체의 전체적인 건강이 가치 있다고 평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레오폴드는 대지 그 자체를 유기체적 전체로서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대지의 윤리가 개체론적이고 도구적인 것은 아니다. 즉 대지가 유기체적 전체라면 체계 전체 그 자체가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대답해야 한다.
생태학적인 사실 그 자체가 생태학적인 통합성과 안정성이 윤리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증명하는’것은 아니다. 레오폴드는 윤리학의 영역을 대지로 확장하는 윤리적 혁명은 인류의 심리상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덕과 생태학에 관한 교육을 통해서 성취될 수 있는 심리학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존재와 당위사이에 존재하는 단절을 보완해 주는 가교 역할을 할지 모른다.
레오폴드는 생태학적 전체를 윤리적 고려의 대상으로 주장하는 윤리학적 전체론이 인류가 자신의 태도를 바꿀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 즉 대지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게 될 때 생태학적 전체에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하게 된다고 보았다. 우리가 생태계를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연적이고 정상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생태학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지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접근법을 취할 경우 ‘통합성과 안정성의 원리’에서 추론된 규범적 원리는 그 힘을 잃게 된다. ‘안정성과 통합성의 원리’는 우리에게 ‘도구적/경제학적 용어로 표현되는 사고를 중지’하고 레오폴드의 제안처럼 ‘산술적 평가과정’이 대지에 대한 윤리적 고려로 확장되지 못하도록 봉쇄하라는 것이다.
5. 대지의 윤리 비판 2 : 전체론적 윤리학
대지의 윤리에 대한 두 번째 비판은 전체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가 근거하고 있는 두 가지 관심은 ① 생태학적 ‘전체’에 관한 설명을 지지할 수 있는가 ②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것을 윤리적인 측면에서 수용할 수 있는가이다.
대지의 윤리에 대한 가장 윤리적인 비판은 전체의 선을 위하여 개체의 희생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생물공동체의 평등한 구성원인 인류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특히 공동체의 안정성과 통합성, 그리고 아름다움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대지의 윤리가 지니는 이러한 난점에 대해서 키일은 윤리학적 전체론을 ‘전체주의’라고 비판하고, 카츠는 개체에 대한 존경을 무너뜨린다고 비판한다. 또한 레간은 레오폴드의 대지의 윤리는 자연에 관한 전체론적 관점과 개체론적 관점에서 전자를 취함으로써 개체를 더 큰 생물적 선을 위하여 희생시키는 환경 파시즘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레오폴드의 전체론은 어떻게 지지될 수 있을까? 몰린은 레오폴드가 옳고 그름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사물’이라는 단어를 강조하여 설명한다. 그는 레오폴드를 간접적 전체론자(우리가 사물을 어떤 행동이나 규칙, 또는 태도의 형식으로 이해)로서 이해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몰린이 제안하고 있는 것은 앞서 논의한 ‘성격윤리학’과 통합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우리가 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을 제안하고 있다기보다는 우리가 갖추고 있어야 할 성격의 특질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몰린은 직접 전체론과 간접 전체론이 궁극적으로 구분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가 하면 레오폴드 또한 생태학조차도 생물공동체의 안정성과 통합성을 보존하는 것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레오폴드의 원칙을 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지침으로서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생태학은 우리에게 생물체계가 지극히 복잡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생태학적 윤리학은 우리에게 생태학적 윤리학이 근본적으로 불명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우리는 어떤 경우에 어떤 행동이 ‘적절한 것인지’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생태계에 대해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레오폴드의 윤리학은 행위를 지시하는 것보다는 도덕적 기질 또는 덕들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기 위한 조건을 결정할 수는 있다. 우리가 최선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양식에 따른 최선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 생물공동체에 대해서 감사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양식일 수 있다. 이러한 양식을 가진 인간이 결정을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윤리적으로 책임성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레오폴드의 전체론적 윤리학이 안고 있는 마지막 문제는 생태학적 ‘전체’에 대한 설명은 지지될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이다.
레오폴드의 전체론은 공동체-기능 모델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이 모델에 따르면 생태계의 구성원들은 기능적으로 각각의 다른 유기체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개별 유기체의 배열과 다른 유기체와 그것들 사이의 관계가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태계에 대한 이러한 설명이 레오폴드의 윤리학에서도 요청된다고 할 수 있는가? 레오폴드에게 있어 최소한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우리가 ‘공동체’ 그 자체를 도덕적인 고려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지, 그것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생물’공동체를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은 공동체가 어떤 선을 가지고 있거나 그것이 가지고 있는 어떤 이해관계에 한해서만 비로소 가능하다.
6. 요약 및 결론
대지의 윤리에는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오폴드의 작업은 환경에 관한 철학적 성찰에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생태계와 그 관계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즉, 생태학적인 ‘전체’를 중요한 도덕적 고려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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